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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am

온라인의 추억..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어간이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기 7,8년 전쯤 된다. 아마도 88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일테니 벌써 20년이 넘은 얘기다. 8비트 컴퓨터로 베이직 명령문을 열심히 짜곤 했다. 이후 5,6학년쯤에 하드디스크도 없는(!) 16비트 컴퓨터가 주종이던 학교 컴퓨터실에서 아이들이 플레이하던 페르시아의 왕자를 열심히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흑백으로.

8비트 컴퓨터를 광고하고 계신 김정흠 박사님..



 내 컴퓨터를 갖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였다. 삼성 매직 스테이션 브랜드의 486DX2-66기종.. 그나마 그것도 당시 200만원이 넘는 고가였다. 이 때 윈도 3.1 한글판을 번들로 줬었고, 얼마 지나 윈도95를 구해서 직접 깔았다. 삼국지3, 퍼스트퀸4, 은영전4EX, 삼국지 무장쟁패....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지금보다도 없어서.. 또 학생이라는 핑계로 게임이나 기타 소프트웨어를 많이들 빌려주고 또 빌려서 깔았다. 야한 사진도 많이 돌았다.

 친구 아이디를 빌려 피시통신도 들어갔다. 당시 최초의 윈도 기반 피시통신이라던 유니텔이었다.. 안녕전화나 천리안, 나우누리도 구경삼아 종종 갔었다. 채팅은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활자중독이었던 나는 피시통신에 널린 유머나 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전화요금 문제 때문에 주로 베스트 유머나 인기있던 소설 위주로 재빨리 갈무리해서 오프라인에서 읽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달 전화요금 내역을 보고 황당해하셨다. 전화요금이 8만원이 나왔던 거다. 어느집 애는 피시통신때문에 전화요금이 백만원도 넘게 나와서 피시통신을 금지당했다, 아니다 걔 부모님이 컴퓨터를 부쉈단다.. 와 같은 흉흉(?)한 소문도 돌던 시절이었다. 피시통신을 하던 많은 사람들은 삐삐삐~치익 하던 모뎀소리와 세트로, 전화요금의  추억(?)하나쯤 다들 있을 듯.

 

당시로선 최신이었던 56K 모뎀. 야사나 야설 받기에 좋았다.


 

 대학 다닐 땐 그런 전화요금 걱정은 없었다. 공짜였으니까. 당시는 사설 BBS의 천국이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키즈와 마법의성밖에 없지만.. 대학내 비비에스 메뉴에 걸린 사설 BBS만 40개가 넘었다. 역시나 활자 중독이었던 나는 그 방대한 게시판의 글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군대가기 전까지...
어찌어찌 하이텔 아이디를 만들어 결제해가며 네크로맨서의 좀비를 자처한 것도 그 당시였다. 퓨처워커와 폴라리스랩소디가 연재되던 때였다.

 제대해서 본 온라인 세상은 완전 딴세상이었다. 활자로 구성된 세계는 한물 가고 www에 GI환경이 대세가 된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대한민국을 점령했다. 8만원어치 전화요금에 놀라던 집에도 유승준이 광고하는 ADSL이 깔려 있었다. 입대 전 학교 앞에 단 하나 있던 인터넷 까페를 보고 저게 잘 될까 하고 주제넘은 걱정을 하다가 제대하고 나서 나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II와 스카이러브가 점령한 그 수많은 PC방 중 하나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단 2년만에 그렇게 바뀐 것이다.


네가 잡은 바알이 묵사바알(..;;)은 아니겠지~~


 

  그런데 제대하고 나서도 내 활자중독은 변함이 없었다. 게임이나 채팅에 빠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어떤 면에선 활자중독이나 게임중독이나 별다를 게 없다. 뭔가를 읽기 위해 밤을 새는 일도 많았다. 잡글도 많이 끄적이고...  그러면서 보잘것 없지만, 내가 쓴 글들을 좀 모아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유머나 정보, 감명깊었던 사진/글들도 좀 모아보고 싶었다. 때는 홈페이지의 붐을 지나 미니홈피의 시대에 와 있었다.
그러나 미니홈피는 답답했다. 개설해서 사용하긴 했지만, 쓰면서도 항상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도 작았고, 글 너비도 작았다. 긴글은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스크롤이 한없이 내려간다. 유행은 금방 지나갔고 나도 내 미니홈피에조차 방문이 뜸해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블로그와 RSS가 인터넷 세상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피시통신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변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겠지만, 블로그/트위터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는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방기돼 있던 이글루스의 블로그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뭐 그런 거지. 이 곳에 둥지를 틀면서 원래 쓰고 싶었던 주소와 닉네임이 선점된 걸 알고 좀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눈팅을 너무 오래 했다. 예전에는 쉽게 쓰고 쉽게 올렸던 포스팅을 하는 데 좀 많이 애먹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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