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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am

입대날 풍경..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때가 있습니다. 군입대를 전후해서 일어난, 생선토막처럼 뚝뚝 끊어진 기억들입니다. 아마 징병제국가인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그날들의 추억을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요. 사람마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날들을 말입니다.

 

 이 글과, 거기 달린 덧글들을 읽으면서 저도 그 비슷하지만 다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 입대일은 4월 1일입니다. 입대일을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나타낸 반응처럼 저도 입대일 당일까지.. 아니 그 이후 며칠이 지날 때까지도 제게 일어난 일이 거짓말이길 바랐습니다. 훈련소에 찾아가면 그곳에서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그냥 돌아가라고 말하줄 지도 몰라..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대까지 했었지요. 저뿐 아니라 같은 날 입대했던 많은 동기들이 그런 생각, 그런 말들을 했었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저는 그날 입대해서 26개월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저만의 특별한 만우절... 입대 당시를 상기하곤 하지요.

 

나보고 군대 한 번 더 가라고? 아무리 만우절이라지만 넘 심한 거아님?

 

 입대 전날.. 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편안히 보내고(그 집에서는 확실히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백일휴가 나오니 집이 이사했더군요.) 12시쯤 논산 입소대대 앞에서 맛없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입대하려는 사람들과 그 가족/지인들로 식당은 가득했지만,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선 '이런 집은 다신 오지 말아야겠다..' 하셨지만, 어차피 다시 올 일도 없었죠. 다신 올 일 없는 그 식당에 바글바글했던 사람들과... 그 다신 올 일 없을 사람들을 대하던 식당 주인의 성의 없는 접대도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 논산의 식당들에서 입대 장정들의 부모님들은, 연인들은.. 그래도 그 맛없는 밥이나마 사회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라고 열심히 챙겨주고 있겠죠..

 

 입소대대에 들어간 직후에는 정신이 없었지요. 보급품 받고, 입고있던 사복은 누런 종이에 싸서 보내고, 모포개는 법, 전투복 입는법, 전투화 끈묶는 법, 옷이나 이불 각잡는법 등등을 배우고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죠. 그 한숨 돌린 후도 참 고역이었지만요.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앞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참 일이었거든요.

 

 자려고 자리에 누웠을 때도 내가 입대했다는 게 실감이 안 났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집일 것 같았죠. 뭐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그래도 첫날엔 운 좋게도 불침번에서 빠졌는데, 도중에 깨지 안고 푹 잔다는게 얼마나 편한 건지는 나중에 군생활하면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교육연대에서의 6주는 입소대대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참 정신없이 힘들었지요.. 하지만 또 나중에 돌이켜보면 비록 몸은 힘들었어도 동기들끼리 있었기에 그곳만큼 마음이 편했던 때도 없었습니다. 이등병 계급장 달고 뿔뿔이 흩어질 때.. 서로 연락처 적어주며 꼭 연락하라고 했던 기억도 나는데.. 혹 전역하고나서도 훈련소 동기랑 연락하고 지내시는 분들 있나요? 흐흐.. 네... 저도 안해봤습니다.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군대... 하면 징병 신체검사에서 2급 받을 때부터 최근 민방위훈련 받을 때까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군대꿈을 꾼다죠? 저도 얼마 전에 선임이 저 갈궈대는 꿈을 꿨습니다. 일어나니 식은 땀이..   이런 경험을 언제까지 해야 되나 싶네요.

 

 뭔가 그래도 군대 가면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고 써야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생각이 안 나는군요.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기술이나 배우고 오는 건데 장점이 어딨겠습니까. -뭐 전 의무병 특기를 받아서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받긴 했습니다만, 병기본교육 받고 사격하고 하는 건 다른 병과와 다를 게 없습니다. 어느 병과든 우리편 손실은 적게, 상대편 손실은 크게.. 그게 군대지요.- 그냥 국민의 의무니까 갔다오는 거지요.. 그래도 지금은 좀 낫죠. 저 이등병 땐 월급이 9,900원 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올랐잖습니까. 군생활 할 때 월급 받는 걸 시급으로 계산해보고 참 어이가 없었더랬죠. 앞으로 더 올라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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